三國史節要에 나오는 印觀과 署調
三國史節要 新羅 儒禮王 15년조에는 印觀과 署調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무오년 (진 혜제 원강 8년, 298년) 신라 유례왕 15년. 기림왕 원년, 고구려 봉상왕 7년, 백제 책계왕 13년 분서왕 원년
○봄 2월 계림에 심한 안개가 끼었다. 5일 동안 사람을 분간하지 못하였다.
○가을 9월 고구려에 서리와 우박이 곡식을 해쳤다. 백성들이 굶주렸다.
맥인(貊人)이 백제에 침입하였다. 백제왕 책계가 나가 막다가 적에게 살해당하였다. 큰 아들 분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풍채가 걸출하였으므로 왕이 그를 사랑하여 항상 옆에 두었다.
○겨울 10월 백제가 크게 사면을 하였다.
고구려가 궁실을 증수하였는데 극도로 사치하고 화려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백성들이 굶주리고 괴로워하였다. 신하들이 여러번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고구려왕이 돌고의 아들 을불을 찾아 죽이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계림에서 印觀, 署調 2인에게 작위를 내렸다.
신라에 印觀과 署調 2인이 있었다. 印觀은 저자에서 솜을 팔았는데, 署調가 곡식으로 이를 사서, 돌아오는데, 홀연히 소리개가 나타나 솜을 낚아채서 印觀의 집에다 떨어뜨렸다. 印觀이 이를 거두어 저자로 돌아와서 署調에게 말하기를,
"소리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기에, 이제 그대에게 돌려준다"
하니 署調가
"소리개가 솜을 빼앗아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의 뜻인데, 내가 어찌 받을 수 있겠느냐"
하니 印觀이 말하기를,
"그러면 너의 곡식을 되돌려주겠다."
하니 署調가,
"내가 시장에서 너와 사고 판 지가 이틀이나 되었으니, 곡식은 이미 너의 것이다."
하며,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다가 결국 저자에 버리고 돌아갔다. 掌市官이 이를 아뢰니, 왕이 두 사람에게 모두 작위를 내렸다.
○12월 신라왕 유례가 훙(薨)하고 기림이 즉위하였다.
기림은 조분왕의 아들 걸숙의 아들이다. [註 삼국사기 원문에는 "乞淑"으로 적혀 있다. 삼국사기 원문에 따라 걸숙으로 적는다.]
東史綱目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무오년 신라 유례왕 15년ㆍ기림왕 원년, 고구려 봉상왕 7년, 백제 책계왕 13년ㆍ분서왕 원년(진 혜제 원강 8년, 298년)
○봄 2월 계림에 심한 안개가 끼었다.
5일 동안 사람을 분간하지 못했다.
○가을 9월 晉人 및 貊人이 백제에 침입하자. 백제왕이 나가 싸우다가 패하여 죽으니 큰 아들 汾西가 즉위하였다.
진인이 맥인과 함께 내침하니, 왕이 나가 막다가 貊의 군사들에게 살해되고, 분서가 즉위하니 이가 汾西王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儀表가 英傑하여, 왕이 매우 사랑하여 옆을 떠나지 않게 하였다.
고구려에 우박이 내리고 기근이 들었다.
○겨울 10월 고구려가 궁실을 증수하였다.
왕이 궁실을 증수하되 자못 사치하고 화려함을 극하니, 백성이 굶주리고 괴로워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 계림에서는 印觀ㆍ署調 2인에게 작위를 내렸다.
두 사람은 모두 신라인이다. 인관은 일찍이 저자에서 솜을 팔았는데, 서조가 곡식으로 이를 사서 돌아오는데, 홀연히 소리개가 나타나 솜을 낚아채서 인관의 집에다 떨어뜨렸다. 인관이 이를 거두어 저자로 돌아와서 서조에게 말하기를,
“소리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기에, 이제 그대에게 돌려 준다.”
하니, 서조가,
“소리개가 솜을 빼앗아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의 뜻인데, 내가 어찌 받겠느냐!”
하였다. 인관이,
“그러면 너의 곡식을 되돌려 주겠다.”
하니, 서조가,
“내가 너와 사고 판 지가 이틀이나 되었으니, 곡식은 이미 너의 것이다.”
하며,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 양보하다가 결국 저자에 버리고 돌아갔다. 掌市官이 이를 아뢰니, 왕이 두 사람에게 모두 작위를 내렸다.
○12월 계림 이사금 유례가 薨하고 조카 기림이 즉위하였다.
이가 기림[基臨:基丘라고도 한다.] 이사금이니, 조분왕의 아들 乞叔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阿尒夫人이다. 천성이 관후하여 사람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註 基丘는 基立의 오기로 추정된다.]
고려 충렬왕 때 문신 秋適이 지은 明心寶鑑 廉義篇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印觀 賣綿於市 有署調者以穀買之而還 有鳶 攫其綿 墮印觀家 印觀 歸于署調曰 鳶墮汝綿於吾家 故還汝 署調曰 鳶攫綿與汝天也 吾何受爲 印觀曰 然則還汝穀 署調曰 吾與汝者市二日 穀已屬汝矣 二人相讓 幷棄於市 掌市官 以聞王 竝賜爵 인관(印觀)이 장에서 솜을 파는데 서조(署調)라는 사람이 곡식으로써 솜을 사 가지고 돌아가더니 솔개가 그 솜을 채 가지고 인관의 집에 떨어뜨렸다. 인관이 서조에게 솜을 돌려보내며 말하기를, “솔개가 너의 솜을 내 집에 떨어뜨렸으므로 너에게 돌려보낸다.” 하니, 서조는 말하기를, “솔개가 솜을 채다가 너에게 준 것은 하늘의 뜻이다. 내가 어찌 받겠는가?” 하였다. 인관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솜 값으로 받은 너의 곡식을 돌려보내겠다.” 하니, 서조가 말하기를, “내가 너에게 준 지가 벌써 2일이 지났으니, 곡식은 이미 너에게 귀속되었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사양하다가 솜과 곡식을 다 함께 장에 버리니, 시장을 맡아 다스리는 관원이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모두 벼슬을 주었다.」
明 范立本이 엮은 明心寶鑑 安分篇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아래 내용은 范立本이 쓴 원문이 아니라 현대에 들어와 누가 註釋을 하면서 印觀 등에 관한 글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혹시 현대에 들어와 범입본의 明心寶鑑에 주석 글을 단 사람이 현대 사람인 중국 북경대학 출신 역사학 석사李朝全이 아닌지? 그렇다면 중국의 명심보감에는 원래 印觀 등에 관한 글이 없었고 현대에 들어와 李朝全이 范立本의 명심보감을 주석하면서 비로소 印觀 등에 관한 글이 註釋으로 들어간 것인가?
「尚書 說 “自滿招致損失 謙虛則會獲益” 印觀到市場上賣棉布 有位署調官用穀物換了他的棉布回去 一隻老鷹攫取了他的棉布並把它扔到印觀家裡 印觀取了棉布回到市場歸還給署調說 “老鷹將你的棉布扔到我家 因此我取回來還給你 ”署調說 “老鷹攫走棉布送給你 這是上天的旨意 我怎麼能接受呢? ”印觀回答 “既然這樣 那我就還你穀物”署調說 “我和你交易已經兩天 穀物已經屬於你了” 二人相互推讓 把東西都扔在市場上回去了 管理市場的官員把這件事報告國王 國王給這兩人都封了官職」
그러나 삼국사기 신라본기 儒禮尼師今 本紀에는 印觀과 署調에 관한 내용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혹자는 이 사실이 基臨尼師今 때 일어난 사실인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三國史節要에 의하면 印觀과 署調에 관한 내용이 儒禮尼師今 15년 10월조에 적혀 있다. 유례이사금은 그해 12월에 죽었으므로, 이 사실은 유례이사금 생존 때 일어난 사실이 틀림없다.
한국 역대인물 영상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index.jsp ) 홈페이지에도 유례이사금 때의 인물로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