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書紀의 비밀

 

日本書紀는 고대 일본의 6 史書 중 가장 중요한 사서이다. 그런데 日本書紀는 序文이나 跋文이 없어 저자, 편찬시작 시기, 펀찬경위가 명확하지 않다.

日本書紀보다 8년 앞서 편찬된 古事記에는 序文이 있어 太安萬侶가 저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續日本紀 養老 4년(A.D 720년) 5월 계유조에는 "앞서 1품 舍人親王(A.D 676~735년)이 勅을 받들어 日本書紀를 편수하여 이에 이르러 완성하여 紀 30권과 系 1권을 바쳤다(先是 一品 舎人親王 奉勅修日本紀 至是功成奏上 紀卅巻 系図一卷)"라고 적혀 있어 舍人親王이 일본서기 편찬자로 적혀 있다. 그러나 舍人親王은 天武天皇의 아들이기 때문에 편찬자로 적히게 된 것이고, 실무상으로 日本書紀를 편찬한 사람은 安萬侶로 보인다.

그런데 백제가 멸망한 후 大和 조정이 日本書紀 편찬 이전에 이미 국가적 修史 사업에 착수한 흔적은 여러곳에서 보인다. 天武天皇 10년 3월조를 보면, 천황이 川島皇子 등 12명에게 詔하여 帝紀 및 上古의 여러 일을 기록하고 정하게 하여 大山上 中臣連大島와 大山河 平群臣子首가 친히 집필하여 기록하였다는 내용이 나오고(이때는 아직 일본서기 편찬을 시작한 시기로 보기 어렵다.), 그뒤 元明天皇 7년(A.D 714년) 2월 9일조에 紀朝臣淸人과 三宅臣藤麻呂에게 국사 찬술의 조칙이 내려졌다(戊戌 詔從六位上紀朝臣清人 正八位下三宅臣藤麻呂 令撰國史)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보면 大和倭 조정은 백제 멸망 후 나라 체계를 일신하기 위하여 율령을 정비하고 帝紀를 정리하여 사서를 편찬하는데 힘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日本紀에는 일본서기 편찬자가 舍人親王으로 적혀 있지만 실무를 총괄한 사람은 A.D 712년에 古事記 편찬을 끝낸 太安萬侶로 보인다. 安萬侶의 자손이 弘仁 3년(A.D 812년)에 쓴 日本書紀 강의서인 "日本書紀私記(약칭 弘仁私記)에는 日本書紀 편찬에 安萬侶가 참가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日本書紀를 연구한 일본의 학자들은 日本書紀 30권이 천황 순서에 따라 지어지지 않고 14-21권이 먼저 지어진 후 그 뒤 1-13권 등이 지어진 것, 文體가 漢文에 능숙한 사람이 쓴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쓴 것으로 구분되는 것 등 차이가 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日本書紀 1.2권에는 神代의 역사가, 3권에는 神武天皇紀가, 4권에는 2세 綏靖天皇紀부터 9세 開化天皇紀까지, 5권에는 崇神天皇紀가, 6권에는 垂仁天皇紀가, 7권에는 景行天皇紀, 成務天皇紀가, 8권에는 仲哀天皇紀가, 9권에는 神功皇后紀가, 10권에는 應神天皇紀가, 11권에는 仁德天皇紀가, 12권에는 履中天皇紀, 反正天皇紀가, 13권에는 允恭天皇紀, 安康天皇紀가, 14권에는 雄略天皇紀가, 15권에는 淸寧天皇紀, 顯宗天皇紀, 仁賢天皇紀가, 16권에는 武烈天皇紀가, 17권에는 繼體天皇紀가, 18권에는 安閑天皇紀, 宣化天皇紀가, 19권에는 欽明天皇紀가, 20권에는 敏達天皇紀가, 21권에는 用明天皇紀,崇峻天皇紀가, 22권에는 推古天皇紀가, 23권에는 舒明天皇紀가, 24권에는 皇極天皇紀가, 25권에는 孝德天皇紀가, 26권은 齊明天皇紀가, 27권은 天智天皇紀가, 28권.29권은 天武天皇紀가, 30권은 持統天皇紀가 각 적혀 있다. 그런데 日本書紀 30권은 만들어진 시기, 쓰여진 文體가 漢文에 아주 능통한 中國人이 쓴 것과 漢文에 익숙하지 않은 倭人 또는 도래인의 후손이 쓴 것으로 구분된다.

가. 1-13권 등보다 먼저 지어지고 漢文에 능숙한 사람이 쓴 것 -- 14권부터 21권까지, 24권부터 27권까지

나. (가) 보다 늦게 지어지고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倭人 또는 도래인의 後孫이 쓴 것 -- 1권부터 13권까지, 22권과 23권, 28권과 29권

다. (가)도 (나)도 아닌 것 -- 30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가?

大和倭 정권이 이왕 日本書紀를 짓기로 마음 먹었다면 1권부터 순서대로 짓거나, 아니면 최소한 大和倭 왕조가 시작된 應神天皇紀부터 지어야 사리에 맞다. 그런데 왜 百濟系 도래인 출신 天皇이 아닌 고구려계 天皇인 雄略天皇紀부터 지었을가?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百濟系 도래인 출신으로 天皇이 된 應神天皇은 A.D 390년에 즉위하여 A.D 400년에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패하고 또 북륙지방의 新羅系 吉備國 무리들에게 패하여 백마를 잡아 항복하고 6현을 떼어주는 치욕적인 패배를 기록한 왕이고, 그뒤 履中天皇부터 雄略天皇까지 廣開土王의 후손인 고구려계 천황이자 應神天皇紀부터 짓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百濟系 천황도 아닌 高句麗系 천황인 雄略天皇紀부터 왜 지었을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雄略天皇은 고구려계 천황이지만 재위 중 고구려의 세력권에서 벗어나 고구려와 적대세력이 되었고, 그 뒤를 百濟系 도래인 천황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雄略天皇紀부터 지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天武天皇紀가 늦게 지어진 것은 親新羅系 천황이었던 것과 관련이 있어보이나, 推古天皇紀와 舒明天皇紀가 늦게 지어진 이유는 좀 의문이다.

日本書紀에 적혀 있는 일본의 역사를 살펴보면, B.C 667년 이전은 歷史時代가 아니라 神代로 적혀 있고, B.C 667년에 神武天皇(神日本磐余彦天皇. 諱 彦火火出見)이 東征을 시작하여 7년만인 B.C 660년 2월에 東征을 마치고 3월에 日本國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日本書紀 神代에는 古記에 滿洲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주하였다고 적혀 있는 陝野奴가 素戔嗚尊으로 적혀 있고, 그 뒤 일본열도를 평정하였다고 적혀 있는 彦波弗哈이 彦波瀲武鸕鷀草葺不合尊으로 적혀 있으며, 이들은 일본국의 國祖神으로 적혀 있다. 또 古記에 B.C 667년에 日本列島를 평정하였다고 적혀 있는 陜野侯 裵幣命이 일본국의 건국시조인 神武天皇으로 적혀 있다. 즉 日本書紀에는 일본의 역사가 土着倭의 역사부터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滿洲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주한 夫餘 무리의 역사가 적혀 있다.

日本列島에는 滿洲에 살던 무리가 이주하기 훨씬 전부터 土着倭나 韓地에서 건너간 무리가 살고 있었는데, 日本書紀 저자는 왜 土着倭나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한 무리의 역사는 적지 않고,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주한 夫餘 무리의 역사부터 적었을까? 만약 日本書紀를 만든 安萬侶가 일본의 역사가 시작된 시기를 더 소급시킬 의도가 있었다면 최소한 중화족이나 한민족이 주장하는 고대국가 성립시기까지 일본국의 역사를 소급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安萬侶는 일본의 고대국가 성립시기를 B.C 660년 이전으로 소급시키지 아니하였다.

왜 그랬을까?

安萬侶 정도되는 대학자라면 중국 史書나 舊 三國記, 古記를 이미 다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日本國의 성립시기를 B.C 660년 이전으로 소급시키지 아니한 것은 日本書紀 를 지음에 있어 어떤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에 의거하여 어떤 자료를 참고하여 일본국의 성립시기를 B.C 660년으로 정하였음이 분명하다.그 이유는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百濟遺民 安萬侶는 日本書紀를 지음에 있어 일본 역사의 주체를 日本列島로 이주한 夫餘 무리로 한정하였고, 그 때문에 日本書紀에는 일본열도로 이주한 夫餘 무리의 역사 위주로 적혀 있다.

安萬侶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하여 日本國과 夫餘 무리와의 관계를 살펴본다.

古記에 의하면 檀君朝鮮(B.C 2333-238년) 때 滿洲 중앙은 해와 달의 아들을 칭한 辰汗의 관경에 속하였고, 서쪽은 辰汗의 裨王인 番汗의 관경에 속하였으며, 동쪽은 辰汗의 비왕인 馬汗의 관경에 속하였다. 이때 馬汗의 관경에 속한 지역은 滿洲 동쪽, 韓半島, 對馬島, 九州 등지였는데, 각 무리들은 다른 汗이 다스리는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檀君朝鮮이 멸망한 후 韓半島로 이주하거나,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로 이주하였는데, B.C 194년에 滿洲 남부에 있던 箕子朝鮮의 마지막 왕 箕準이 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무리들과 함깨 韓地로 이주하여 토착 韓 무리를 공파하고 漢水 이남에 馬韓, 辰韓, 弁韓 三韓을 세웠고, 그 무리 중 일부는 다시 對馬島, 日岐島, 九州 등지로 이주하였다. 이때 九州 등지에는 滿州의 선진 농업문명을 가진 夫餘 무리가 대량 이주하므로써 彌生文化 시대가 시작하였다.

 

1세 架空始祖 神武天皇

日本書紀에는 B.C 667년에 神武天皇이 東征을 시작하여 7년만인 B.c 660년에 일본국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日本書紀는 日本列島로 이주한 夫餘 무리의 역사를 적은 史書이므로, 日本書紀대로라면 만주의 부여 무리가 B.C 667년에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7년만인 B.C 660년에 일본국을 세운 것이 된다. 그렇다면 B.C 667년에 陜野尊이 日本列島로 이주하여 일본열도를 평정하였다는 내용은 어디에 나올까?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그 내용은 古記에 나온다. 桓檀古記 檀君世紀는 檀奇古史를 底本으로 하여 지었고, 檀奇古史는 日本書紀를 지을 무렵인 발해 武王 원년(A.D 719년)에 大野勃에 의하여 지어졌다. 따라서 檀寄古史를 지은 大野勃이나 日本書紀를 지은 安萬侶 모두 같은 古記를 저본으로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36세 매륵 檀君 갑인(B.C 667년) 陜野侯 裵幣命을 보내어 해상을 토벌케 하였다. 12월에 三島가 모두 평정되었다. 遣陜野侯裵幣命 往討海上 十二月 三島悉平」 환단고기 단군세기

 

日本書紀 著者는 古記를 보고  陜野尊 즉 神武天皇이 日本列島를 평정하여 日本國을 세웠다고 적었다. 그러나 古記에는 陜野侯 裵幣命이 日本列島를 평정하였다고만 적혀 있지 日本國을 세웠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또  神武天皇 다음에 나오는 2세 綏靖天皇부터 9세 開化天皇까지가 모두 架空天皇인 것으로 보아, 神武天皇도 가공천황임이 분명하다.

 

2세부터 9세까지 架空天皇

2세 綏靖天皇 B.C 581년 즉위

3세 安寧天皇 B.C 549년 즉위

4세 懿德天皇 B.C 510년 즉위

5세 孝昭天皇 B.C 475년 즉위

6세 孝安天皇 B.C 392년 즉위

7세 孝靈天皇 B.C 290년 즉위

8세 孝元天皇 B.C 214년 즉위

9세 開化天皇 B.C 158년 즉위

 

日本書紀 저자는 神武天皇을 架空始祖로 만든 후, 崇神天皇 이전까지의 천황 공백기를 해결하기 위하여 가공시조인 神武天皇부터 만주에서 일본열도로 이주한 夫餘 무리의 나라가 실제로 시작된 崇神天皇 사이에  8명의 架空天皇을 만들어 넣었다. 그 때문에 2세 綏靖天皇부터 9세 開化天皇까지 본기에 세자책봉, 천황의 즉위와 사망 사실 등이 짤막하게 적혀 있다.

 

10세 崇神天皇(B.C 97년 즉위)

기원전 2세기에 남만주, 한반도, 일본열도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日本書紀 崇神天皇紀 12년 3월조에는 숭신천황 때부터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적혀 있다.

 

「전략..이 때문에 칭송하여 어조국천황(御肇國天皇)이라 한다.」 [註 : 어조국은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日本書紀 저자는 숭신천황 때부터 실제로 나라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B.C 194년에 南滿洲에 있던 箕子朝鮮의 마지막 왕 箕準이 衛滿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한반도로 이동하였고, 그 무리 중 일부가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우므로서 이 무리들의 역사부터 일본에 실제로 나라가 시작된 시기로 보았다. 그 이전에도 土着倭 무리들의 역사가 있었을 것이나 日本書紀는 부여 무리의 역사를 적은 것이므로, 土着倭의 역사는 적지 않았다. [이후는 본 홈의 일본열도왜 역사 참조]